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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일사진관 박경선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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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관 운영 65년 외길인생을 걸어오며 수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순간을 기록해 온 천일사진관 박경선(74세) 대표.
그녀는 올해로 65년 째 거창읍 로터리 부근에서 천일사진관을 운영해 오는 동안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 시절부터 암실 작업, 그리고 급격한 디지털카메라의 보급과 스마트폰 시대로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이 모두를 몸소 겪으셨을 모진 세월과 격변의 시기를 모두 이겨내고, 65년이란 세월을 거치며 사진관 외길 인생을 걸어온 것만으로도 숭고한 장인정신을 넘어, 한 편의 위대한 역사나 다름 없다..
이처럼 박 대표가 65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을 사진관을 운영해오는 동안 박 대표의 렌즈를 거쳐 간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은 덕분에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찰나를 추억으로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의 첫 돌, 가족들의 화목한 순간, 젊은 청춘들의 증명사진까지… 그 모든 기록들 뒤에는 박 대표의 땀방울과 남다른 열정이 그대로 녹아있다. 박 대표가 사진관을 운영하게 된 계기는 이미 작고하신 남편(성태영)과 결혼을 할 무렵, 남편이 이미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었고, 남편 성 씨가 2016년 세상을 떠난 후에도 사진관을 그대로 가업으로 이어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65년이라는 반세기를 훌쩍 넘긴 기나긴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오며 지역사회의 희로애락을 카메라 렌즈에 담아온 박 대표와의 인터뷰는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거대한 역사 아카이브를 마주하는 것과 다름 없었다.
한 평생을 바쳐 누군가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기록해 온 박 대표는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 속에서도 묵묵히 아날로그의 가치를 지키며, 지역민들의 탄생부터 황혼에 이르기까지를 모두 지켜본 65년 경력의 베테랑 사진사다. 마치 그녀에게 사진은 단순한 직업이 아닌, 지역사회의 시간을 기록하는 사명이나 다름 없다. ‘처음 카메라를 잡았던 날의 설렘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박 대표는 ‘그 시절 사진은 아무나 찍을 수 없는 귀한 것이었다’며 처음 사진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던 1960년대, 사진관은 마을의 가장 큰 구경거리이자, 특별한 공간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필름 한 장이 아까워 숨을 죽이고 초점을 맞추던 청년은 어느덧 백발의 촌로가 되었다. 박 대표는 손때 묻은 옛 수동카메라를 어루만지며, 기술은 변했어도 찰나의 진심을 담는다는 본질만큼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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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관을 방문한 고객과 성실히 상담하고 있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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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을 넘어선 수만 가지 인생사이 사진관의 문을 열고 들어간 이들은 누구나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이했다. 백일과 돌잔치, 졸업과 입사, 결혼과 회갑 등을 통해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깊어가는 과정은 우리네 삶의 그 자체나 다름 없다. 또한 사진관 벽면을 가득 채운 액자들은 곧 지역사회의 움직이는 족보이자, 역사 그 자체나 다름 없다. 디지털 파도 속에서도 지켜낸 아날로그의 온도, 그리고 스마트폰 카메라와 디지털 보정 기술이 대중화되면서 동네 사진관들이 하나둘 문을 닫을 때도 박 대표는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사진관을 운영해온 덕분에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컴퓨터를 다루는 솜씨는 남다른데,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증명사진 등을 찍고난 후 포토샵을 통해 사진을 예뻐게 보정(현상)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작업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루에도 많은 고객들과 만남을 이어가다보면 때론 지칠 때도 있지만, 고객들께서 맡긴 사진이 자신의 손을 거쳐 100% 만족해하며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낼 때면 어느새 하루의 피로도 저만치 달아나버린다는 박 대표는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이 일을 계속 해나갈 계획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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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천일사진관 전경 (거창축협 본점 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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